02. 파우치 Kitty bunny pony Pouch

파우치가 고장 났다. 어느 날 허망하게 똑 하고 지퍼 손잡이가 떨어졌다. 영원히 쓸 수 있을 것처럼 닳는 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파우치였다. 
새 파우치를 구매하기 위해 키티버니포니 웹사이트에 들어간다. 십 주년을 기념한다는 팝업창이 뜬다. 벌써 십 년이 된 브랜드라니, 그렇다면 내가 이 파우치를 산 것도 5년이 넘은 것이 분명하다. 고장 나기 전까지 얼마나 사용했는지 손가락을 접어 보고는 정말 놀랐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10년이라고 말해버리고 싶지만 그럴 확신은 없다. 아마도 7년 혹은 8년? 파우치를 이렇게나 오래 쓰다니!

최초로 마음에 쏙 드는 패턴의 파우치였다. 홍대 앞 지금은 없어진 가게에서 구매했을까? 당시 파우치라는 것은 존재했지만 예쁜 파우치는 없던 시절 키티버니포니가 거의 유일하게 “예쁜” 파우치를 만들어냈다. 까만 천에 금색 실선으로 그려져 있는 패턴. 눈에 좀 익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생선을 담아 파는 스티로폼 용기에도 빨간색으로 같은 패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물 모양인 게지. 생선이 그물에서 잡혔다는 것(“싱싱하다!”)을 기호로 드러내기 위해 그물 모양을 스티로폼 용기에 그려 넣다니 너무 똑똑하고 잔인해! 하지만 검은 바탕에 금색 실선으로 그려놓으니 전혀 다른 감각으로 드러난다.

사용하는 내내 별 불만이 없었다. 우연히 눈길이 가 이걸 갈아치워 버리고 싶은 파우치가 내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안쪽 면에 무엇이었는지 잔뜩 번졌던 오래된 흔적들은 남았지만, 구멍도 하나 나지 않고 튼튼했다.

또 하나의 파우치가 있다. 키티버니포니에서 쿠션을 구매했을 때 함께 왔던 파우치다. 처음엔 너무 강렬한 컬러가 당혹스러웠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흔치 않은 색 배합이다. 내 오랜 파우치가 고장 난 덕에 현재 임시로 사용 중이고 내게 도착한 이후로 종종 혹은 자주 서브 파우치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 파우치도 5년은 족히 되었고 그만큼 튼튼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세 번째 파우치를 구매했다. 구매 버튼을 누르고서 보니 3종 파우치의 패턴과 색이 다 제각각인 것이 재미있다.

키티버니포니는 정말 많은 패턴을 만들어내지만 그중 마음에 드는 패턴을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 다종다양한 패턴들에 눈이 확 트인다.
키티버니포니의 제품은 디자이너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췄다. 그것은 곧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십 년의 세월이 그것을 증명한다. 초창기부터 쓰인 거의 변함이 없는 키티버니포니의 볼드한 세리프체 로고, 다채로운 색을 쓰면서도 가볍지 않은 무게감의 패턴은 키티버니포니만의 또렷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듯하며, 쓰임새가 명확하고 낭비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형태의 제품들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파우치의 만듦새도 전과 비교하면 더 튼튼하고 견고해졌다.  

디자이너는 좋아 보이는 물건을 최소한의 제작 과정 혹은 비용을 들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선수들이다. 디자이너 출신의 대표가 자수공장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와 손을 잡고 만든 브랜드, 좋은 디자인이 좋은 기술을 만나면 좋은 브랜드가 탄생한다! 그리고 키티버니포니의 물건들이 그 시너지의 결과를 보여준다.

글을 마무리할 때쯤 구매한 파우치가 배송되었고 임시 파우치에 든 물건들을 꺼내 옮겨 담았다.
물건을 오래 사용한다는 것은 사용자에게도 달린 일이지만 물건 자체 그리고 브랜드에도 달린 일이다. 오래 사용한 물건의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흔적이 더 좋은 방식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빨리하는 것보다 오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얼마 전 친구에게도 말했었다. 내가 처음을 알고 있는 브랜드들의 끝을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가길 바란다.

 

 

기획 – 나이스숍
글 – 김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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