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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서울메탈, 조유리

 

지난 12 19일 서울메탈의 네 번째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작업물에 조금씩 내비치던 이야기들이 이번 시즌 “Kismet”에서는 전면으로 드러나는 듯하지만, 조유리는 이 모든 이야기를 숨겨두고 외부가 품을 궁금함 또한 그대로 내버려 둔다. 꾸준히 결과물을 내는 창작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 아닐까?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선택과 결정의 기준을 오롯이 자신에게 둔다는 조유리는, 이미 지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일을 지속해나갈 방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 고민과 단단한 이야기들을 을지로의 서울메탈 작업실에서 나누었다.

연말이라 디제잉 섭외도 많으시겠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새 시즌 준비하느라 거의 그것만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최근엔 디제잉 일은 많지는 않고 3~4건 정도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3건이 남았네요. 좋습니다.

서울메탈, 디제이 셀피, 메이크업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일정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관리하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있어요. 닥치는 대로, 되는대로 일을 하니까요. 일정 관리를 좀 체계적으로 잘하며 살고 싶은데 아예 안되는 타입인가 봐요. 오랫동안 고민도 해봤는데 저는 평생을 걸쳐 일정을 잘 지켜본 적도 없고, 안 지키며 살면서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희망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게 됐어요. 제가 상담을 정말 오래 받아왔거든요. 지금 상담 선생님과도 오래 봐 와서 이제는 깊은 이야기 보다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나누는데요, 얼마 전에도 선생님께 체계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읊어 드렸더니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제가 숨 가쁠 정도로 빡빡하게 사는 것 같대요. 그러시면서 계획을 세워 완벽하게 지켜내며 사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이 나서 얘기했는데 선생님은 그 사람 하나 있으니까 롤모델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에게 일정 관리를 못 해서 크게 망친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셨어요. 돌아보니 크게 없더라고요. 선생님은 그러니까 ‘지금처럼 사는 방식을 결국 제가 선택한 것이고, 너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라는 말을 해 주신 거죠. 그렇게 현답을 얻었는데요, 사실 이 이야기를 몇 년 전에도 선생님과 나눴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저는 되는 대로 살면서 일정 관리를 멋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는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사실 모두 일상에서 고치고 싶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계속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나이스숍 두 분 오시기 전에 예지 씨랑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며칠 뒤 마감인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도 안 해놓고 “아 하면 돼~” 하고 말만 하고 있고… 그냥 계속 그렇게 살고 있네요.

그럼 디제이 활동과 서울메탈을 병행하는 것은 딱히 계획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죠. 병행하겠다고 계획해서 시작한 일들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둘 다 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렇지만, 각각의 일하는 저 자신을 구분 짓기는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딱히 혼란스럽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좀 분리를 하고 있어요. 자아를 분리한다는 의미는 아니구요. 밤에 디제잉이 잡힌 날은 서울메탈 작업이나 다른 일은 조금만 한다든지 하는 식의 간단하고도 당연한 조절은 합니다. 각 일이 다른 일에 영향이 없도록 스위치를 잘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가진 에너지의 분배나 조절을 엄청 생각하거든요. 예전에는 제가 멀티가 잘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요, 그냥 산만한 것이었어요. 예전부터 잡다한 것들을 동시에 막 진행하던 사람이었고 그땐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뭐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른 채 모든 에너지를 쏟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와중에 다행히 각각의 일이 분리도 되고 각각의 정체성도 나름 찾게 된 것 같아요.

디제이로 음악을 틀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음악을 듣기는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도 요즘 서울메탈 일을 할 때는 일부러 음악을 안 들어요. 제가 유독 일할 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이나 라디오를 틀어놓거든요. 그것도 제가 너무 하나에만 집중해버리면 마음이 힘들어지는 사람이어서 그래요. 일에 80% 정도는 집중하되, 20% 정도는 따로 분산해놓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말소리나, 백색소음이 있어야 일이 잘돼요. 뭔가 눈이나 귀가 정보 값이 많이 없는 이야기에 가 있지 않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일이 끝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에 집중하기 위한 방도로 늘 약간씩 정신을 분리해놓는 것 같아요. 그런데 디제잉을 시작한 이후에는 음악을 듣는 게 정신 분산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게 된 거예요. 에너지를 20%보다 훨씬 더 많이 써야 하는 일이 된 거죠. 그렇지만 일할 때 말고 평상시나 어디 이동할 때는 아이돌 음악이든 뭐든 그때그때 듣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하고 골라 들어요.

신기하네요. 100%를 다 쓴다고 했을 때의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에요?

힘들다기보다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맞겠네요. 저를 지키기 위해서 쓰이는 에너지를 남기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저는 저를 다 쏟는 느낌이 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 ‘진정성’이라는 단어랑도 가까이 있는 지점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모두 올인하는 태도를 엄청나게 부추기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런 상황에 “왜 그래야 하지?”라는 의문을 좀 갖는 편이에요. “열정!! 불살라!!” 이런 것을 좀 불편해해요. 왜 이런 것이 불편으로 다가오는지는 이번 주 상담 때 물어봐야겠다.

디제잉은 어쩌다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어쩌다 디제잉 수업을 들었어요. 주변 친구들과 남자친구가 디제잉 데뷔를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클럽을 정말 자주 갔었거든요. 전에는 클럽에 놀러 가는 것이었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디제잉을 보러 클럽을 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참 보다 보니 그들이 뭘 만져가면서 음악을 트는지 궁금했어요. 디제이가 하는 움직임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때마침 seasee, miiin, shrimp가 했던 ‘BICHINDA’라는 크루에서 뮤지션 예지Yaeji를 초빙해 하루짜리 디제잉 워크숍을 열었거든요. 그걸 듣게 되었어요. 그 수업에서 디제잉 장비를 만져볼 시간이 있어 해봤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집에 장비가 있어서 전에도 다뤄보긴 했지만, 모르고 만져볼 때와 배우고 나서 만져보는 것과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제대로 작동도 하고 뭐가 되는 것도 같고… 그래서 더 재미가 붙었어요. 그때만 해도 디제잉이란 것 자체가 궁금했던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계속 재미를 붙여가던 중에 마침 노클럽을 하는 측근들에게 섭외가 되어서 디제이로 데뷔도 했죠. 정식으로 해보니 역시 더 재밌어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디제잉이 재미있어요.

원래는 이쯤에서 서울메탈과 디제이 셀피 중 어떤 것이 더 즐겁냐고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완전 다른 즐거움이에요. 제가 산만한 사람이라 오래 앉아있는 걸 잘 못 해요. 그런데 금속 작업을 할 때는 오랫동안 잘 앉아있을 수 있어요. 이상한 이유지만 그래서 이 일을 놓지 않는 것도 있어요. 직업적으로 재밌다기보단 한 가지에 적당히 몰두하고 있다는 그 감각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다른 것에서는 절대 못 느끼는 것이거든요. 음악을 틀 때도 엄청나게 확 집중되는 순간이 있어요. 서울메탈은 장시간이 될 때까지 하는 그런 진득한 집중이라면, 디제잉은 한 시간 플레이하면 후반부 30분부터 고양되는 집중이에요. 그 경험을 하고 나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그 기분이 계속 가기도 하거든요.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순간이 정말 없긴 하잖아요. 이런 것들 때문에 계속하는 것 같아요. 집중이라는 같은 맥락 안에서 두 가지를 다르게 좋아하고 있어요. 말하다 보니 저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서울메탈만 하던 때보다 디제잉을 병행하는 지금이 여러 가지로 더 낫다거나 한다는 생각도 드나요? 확실히 체력적으로는 소모가 더 클 것 같은데.

지금이 더 낫다거나… 별로 그런 걸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건강에 있어서는 사실은 걱정이 되죠. 몇 년 전에 좀 크게 아팠던 적이 있어서 굉장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플레이하는 파티만 가고 있어요. 30대 넘어서고 나니까 확실히 몸이 쇠약해지는 것이 눈에 보여요. 체력뿐만 아니고 체력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여러 요건이 게임할 때 캐릭터 케파(capacity) 막대처럼 그려져요. 체력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 정신력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나뉘어서요. 그래서 요즘엔 뭐든 체력과 정신적인 부분에 마이너스를 주지 않을 만큼만 하자. 가 되었어요.

이제 서울메탈 이야기 좀 해볼게요. 서울메탈을 브랜드화하여 컬렉션을 내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어가죠. 그동안 어떠셨던 것 같아요? 외부로 보였던 모습이나, 스스로가 평가하는 만족도나.

처음에는 브랜드화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여러 말이 오가지 않아도 내가 만든 물건을 팔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판매 사이트를 만들게 된 거예요. 전에는 텀블러에 작품 사진을 조금씩 올렸고, 그걸 보고 주문제작을 원하는 분들과 여러 단계의 소통을 거쳐서 만들어 판매하는 식으로 운영을 했었거든요. 그렇게 제작과 판매까지의 단계에 쓰이는 에너지를 좀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일이에요. 신기하게도 다행히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네요. 저는 사실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가 정말 낮은 사람이라서요. 기대를 ‘0’으로 둬요. 그래서 스스로의 평가는 “생각보다 잘하고 있나 보다.” 정도입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으면 무언갈 해내려는 동력이 조금 달리지 않나요? 보통은 자신이 이만큼은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언갈 시작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저에게 그런 동력은 모두 다 굉장히 내적인 부분에서 시작돼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0’인 것이지, 내적으로의 기대와 기준, 목표 등은 분명히 있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0’은 아니겠지요.(웃음) 그렇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성과나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연결성은 크지 않아요. 다 제 안에 있는 나름의 기준들이거든요. 이를테면, ‘나는 디자인을 할 때 꼭 OOO를 지킨다.’, ‘내 작업물들은 OOO했으면 좋겠다.’ 또는 ‘OOO가 OOO되게 하자.’라는 식으로요. 이런 식의 스스로 정한 규칙이나 원하는 방향, 목표 등이 제 작업의 주된 내용이 돼요. 그것이 결국 저의 동력이 되는 거예요. 그 내적인 목적을 달성하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어요. 그런 기대는 이미 제 안에서 모두 충족되었으니까요. 그런 의미로 기대가 없다는 것이지 사실 내부 동력은 정말 꽉 채워져야 하고, 그랬을 때만 몸이 움직여져요.

유리 씨 작업을 보면 어떤 집중된 형태를 구현해내는 것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예전 ‘작고 얇은’, ‘길고 둥근’ 같은 작업이라든지… 이름을 지을 때 유머가 들어가는 것도 재밌게 느껴지고요. 그것들이 ‘유두’에서 가장 도드라졌다고 생각이 들어요. 앞서 말한 것들은 이런 식으로 드러나길 의도한 것인가요? 그리고 어떤 지점을 중요하게 두는 지도 궁금해요.

어떤 집중한 형태를 구현하는 것에 충실하다기보다 그 반대로 구현된 형태에만 집중되기를 원해요. 그렇게 보셨다면 제 의도가 다행히 먹힌 걸까요? 또, 말씀하신 그 이름들은 유머로 푼 것이 아니에요. 말씀드린 것처럼 물건들의 이미지와 형태만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직설적인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죠.

뒤에 숨겨진 내용을 아예 상상도 하지 못하게 해버리는 것이네요. 오히려 형태에만 집중할 수 있게요.

LIQUID 컬렉션도 액체의 형태니까 ‘LIQUID’예요.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쇼핑몰 형태의 툴을 취한 것도 그 이유와 또 연결돼요. 어쨌거나 텀블러에 작업을 올리던 방식은 개인 작업자의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업로드할 때 조금이라도 작품에 관해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무언갈 계속 쓰긴 썼는데, 저는 그게 좀처럼 스트레스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작업이 하기 싫어질 만큼. 그래서 저에게도, 제 작업을 사고 싶어 하는 쪽에게도 심플한 툴이 필요하겠다 싶었죠. 인터넷 쇼핑몰 형태를 취하고 나니 제가 힘들어하던 그 과정이 정말 딱 삭제되었어요. 마음에 들면 구매하고, 아니면 말고 가 되니까요. 그런 의미로 각각의 상품명에도 번호를 붙여요. 딱 그 의도예요.

이유는 그렇지만 전략으로써는 엄청 쿨해 보여요.

그런 말도 여러 번 들었어요. 유머로 보이고 쿨해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도 쿨하지 않은 이유들이죠.(웃음)

화보를 진행할 때에도 그런 의미 같은 것들은 전혀 알 수 없게 연출을 하는 거예요?

맞아요. 이번 화보를 황예지 씨랑 찍는데 지금도 계속 서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마 이번 새 시즌은 제가 해왔던 것보다 이야기가 더 있고, 그냥 작업만 두고 봐도 그렇게 보일 것 같거든요. 게다가 화보를 황예지 씨가 찍고, 저는 예지 씨가 어떤 스타일의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인지를 아니까 이야기를 배제하려는 연출을 해도 어떻게든 드러날 것 같아서요, 그 부분을 강조해서 부탁하는 중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서사를 감추실 건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또 그때 되어서 저 자신을 들여다봐야죠.

노동적으로는 동일한 작업을 하지만 이 작업이 모두 자신 내부의 흐름에 따라서 다 달라지는 거잖아요. 그것이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비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내부 흐름이 곧 저의 동력이고, 그러다 보니 외부적인 요소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 아닌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제가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굉장히 좋은 동력인 것 같아요. 대부분 자신이 내놓은 것이 하찮을까 봐 많이 걱정하잖아요. 그 전에 이렇게 보호할 수 있는 건데.

‘스스로를 보호하자.’ 가 저에게 있어 가장 큰 힘이에요. 뇌를 굴린 것이 아니고요. 정말 본능적인 것만 남아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해요. 지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돌이켜보니 그랬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지 처음부터 의도한 것도 아니었어요.

이번 컬렉션 촬영도 예지 씨와 하고, 종종 작업실 나눠 쓰는 여성 친구들과도 함께 작업하거나 하는 등 주변 여성 친구들과 협업을 많이 하시잖아요. 여성 친구들과 일하는 것, 어떠세요?

점점 더 그렇게 되었죠. 확실히 편해요. 최소한의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으니까 그 정도의 에너지는 절약이 되는 게 가장 좋은 점 같아요. 그리고 촬영을 진행할 때에도 “이렇게 해주셔야죠. 선생님” 같은 걸 안 해도 되고요, 뭐 그렇다고 딱히 그런 말을 해본 건 아니지만요.(웃음) 사람에 대한 불안함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크게 작용하네요. 사실 일할 때 일 외적으로 경계하거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전 시즌(Take a Walk)에 예지 씨랑 찍은 사진들이 엄청 유쾌하고 편안한 느낌이 났었어요.

그랬구나. 맞아요. 엄청 시끌시끌하고 즐겁게 찍었어요. 그때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요. “야~ 대박이다~~” 이러면서.

앞으로도 여성들과 일을 더 많이 할 예정이에요?

당연히 그럴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고요. 의도했다면 한 것도 같지만.

 

새로 나올 컬렉션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볼게요. (인터뷰는 컬렉션 공개 전에 진행되었다)

음…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에도 내용에 대한 부분은 감춰둘 예정인데 말이죠.(웃음) 형태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해 보자면 이번에는 ‘손’이 엄청나게 나와요.

왜 손이 많이 나오는지는 숨기고 싶으시죠? 꼭 손이어야 했었나요?

네. 명백히요. 그리고 ‘왜’에는 역시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지난 시즌은 액세서리로만 보였을 것 같아요. 목걸이나 귀걸이의 기능을 하는 어떤 형태라는 것까지만 보여주려고 했었다면, 이번 것은 아주 확고하게 그림의 느낌에 가까울 정도로 이미지로 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야겠다고 정한 시작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서울메탈을 브랜드화하고 운영하면서 어느 부분들은 계속 실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런저런 형태를 해봤으니, 이번에는 이렇게 가보자의 수순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오픈한 시즌까지 총 네 가지 컬렉션 중에 좀 더 마음이 가는 컬렉션이 있다면요.

‘LIQUID’요. 첫 번째 시즌도 좋아하긴 하는데요, 지금에 와서는 너무 직설적이었다고 느껴져요. 그때가 페미니즘적으로 ‘브라 벗자’, ‘내 유두 내 것’ 그런 말이 막 나오던 시기였어요. 저나 제 주변이 페미니즘으로 들뜨기 시작했던 때 이기고 하고요. 그래서 신났던 그 마음 그대로 심플하게 작업을 했던 것 같거든요. 그때 안 했으면 지금은 아예 안 나왔을 작업인 것 같아서요. 그랬기 때문에 당시의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그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유두 시리즈는 품절을 걸어놓았어요. 그러고 나니 그다음 시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그 고민을 8~9개월 동안 한 뒤에 만든 것이 ‘LIQUID’예요. 이 작업을 풀어내던 때엔 일을 끌고 가는 새로운 방식을 체득한 시기인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한 내적 동기가 새로운 방법으로 좀 단단해졌달까요? 전 시즌에는 작업하는 방식이 개인 작업자와 학생의 애매한 경계에 있었다면, 그걸 넘어섰던 순간이 ‘LIQUID’였다고도 느껴져요. 제가 여러모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느낀 시즌이에요.

이번 컬렉션도 요즘의 어떤 상황과 무드와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은 건가요?

엄청나게 받죠.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단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관심 있던 이슈로 갈음해주셔도 되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전반에 걸친 영향이니까요.
최근에 스스로 결심한 것이 있어요. 사소하든 크든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을 할 때, 결정을 가름할 최고의 기준을 ‘내가 정말 원하는지’ ‘내가 정말 원하지 않는지’ 열심히 들여다보고, 확신이 들 때 결정을 내리려고 해요. 이런 결심이 새 컬렉션의 시각적 이미지와 직접 연관되어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연결이 많이 되어있어요. 어릴 때는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를 스스로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거든요. 강하게 원하지 않았던 순간도 많았고, 엄청나게 원했는데도 회피했던 순간들도 많았어요. 10년, 20년 지나서 생각해보니 과거에 내가 나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고, 돌봐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해버린 경험들이 나를 꼬이게 만든다는 사실이 차츰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지금의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현재의 나 때문에 미래의 내가 꼬이지 않았으면 좋겠다.’예요.

이제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잘 구분이 돼요?

이제 하나씩 해보려고요. 아직 잘 안되니까 이런 걸 결심 씩이나 하는 것 같고요. 생각과 감정적으로는 선명하게 판단이 섰는데도 전에 하던 행동 양식이나 습관이라는 게 있어서 그냥 해버리거나 안 해버리거나 그런 일들이 지금도 많아요. 그래도 진짜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달라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 상태로 꼬이진 않더라구요.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놓여도 ‘어쨌건 내가 선택한 것.’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게 돼요.

원하는 목적이지만 방법은 원하지 않을 때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원하는 목적에 닿기 위한 방법이 꼭 원하는 방향인 경우는 잘 없더라고요.

맞아요. 그렇지만 선택이 어려워도 늘 무언가는 선택해야 앞으로 나아가니까요. 선택한 주체가 ‘나’라는 것을 늘 상기하면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냥 빠르게 인정이 되고, 억울함도 분노도 안 생기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잘 인정 하려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이게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인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에서 ‘자기 일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하신 것을 봤거든요. 오늘 유리 씨가 했던 얘기들이 그것에 대한 답이라고 느껴져요.

네. 삶과 일 모두 지치지 않는 게 목표인 거죠.

 

컬렉션에 관해서 얘기를 많이 하고 싶지만 어려우니까요.(웃음) 저희 나이스숍과 준비 중인 라인이 있잖아요. 이것에 관해서 얘기를 조금 할까요? 말씀드려 놓으면 많이들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궁금해들 하실까요?(웃음) 사실… 제가 처음 브랜드화를 시작할 때에 기대가 ‘0’이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초반엔 제가 다른 작업을 이렇게 못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용돈 벌이 식으로 하면서 여러 가지 작업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그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더라구요. 계속 식기나 기타 기능적인 물건 혹은 오브제들 같은 새로운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이번에 나이스숍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식기류잖아요?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신나서 하겠다고 한 게 있어요.
예전에 금속공예에 푹 빠져있던 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고, 서울메탈을 하느라 다른 걸 못 해왔으니 숨통 트이는 느낌으로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또 시작하면 망치질하면서 ‘아 왜 한다고 했지?’하겠지만요. 기대가 됩니다. 일단 저희가 기획한 대로 재밌고 멋있는 것들을 제가 잘 만들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2019년 초반에 공개가 되게 하는 게 목표에요. 1월!? 늦어도 2월!!!

 

기획 – 나이스숍
진행 – 김은하
정리 – 윤장미
사진 – 황예지

 

조유리. 서울메탈SEOUL METAL. 주로 은과 동으로 장신구와 소품을 만든다. 최근엔 디제이 셀피DJ Selfie로 언더그라운드 클럽 뮤직과 베이스 뮤직을 믹스하며 디제이 크루 노뮤직(@nomusichq), 여성 디제이 듀오 해피컬러서울(@happy_colors_seoul)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seoul-metal.kr / twitter@seoulmetal / instagram@seoul_me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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