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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에어슬랜드 김수연

 

그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다져 나간 에어슬랜드는 이제 많은 플랫폼에서 찾고, 창작자 마켓 라인업에 늘 이름을 올린다. 생각이나 공상으로만 존재하던 자신의 세계를 구현하고, 그 세계와 경험을 나누기 위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생활을 일구는 것이 중요하다는 에어슬랜드 김수연을 얼마 전 자리 잡은 그의 공간에서 만났다.

 

 

저희가 처음 뵌 것이 밀리언아카이브에서였죠. 에어슬랜드는 숍 오픈 초창기부터 꼭 소개하고 싶었고, 첫 입고 후부터 정말 꾸준히 많은 분이 찾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한데요. 인터뷰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에어슬랜드와 수연 씨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조금 진부하지만 에어슬랜드와 수연 씨 소개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김수연이고 에어슬랜드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에어슬랜드는 다양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고요. 사실 첫 전시 기획안을 본명으로 냈다가 저를 다른 김수연 작가로 오해를 하셔서요. 그때 마침 포털 계정으로 쓰던 아이디였던 에어슬랜드로 이름을 고쳐 기획안을 냈고, 당시 전시 큐레이터도 에어슬랜드로 하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에어슬랜드가 되었어요.

그 첫 전시는 언제였나요?

2017년 9월이니까 2년 전이네요.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에서 했던 <예술가 길드>라는 전시였는데요. 에어슬랜드라는 이름을 가진 것도 작업을 시작한 것도 훨씬 전이지만, 저는 그 전시를 에어슬랜드의 데뷔라고 여기고 있어요. 그전에는 제 작업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전시는 어떤 연으로 참여하게 되셨어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계속 이것저것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때의 저는 제 작업을 아무도 몰라도 되고, 이 상태로 할머니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식의 태도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지냈어요. 그렇게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은 어느 정도 쌓여있었죠. 마침 시립미술관에서 폭넓게 참가 공모를 받고 있었고, 친구에게 권유를 받아 응시하게 됐어요.

 

전공은 파인아트였나요? 어떤 계기로 초 작업을 시작해서 에어슬랜드로 활동하게 된 건지 일련의 과정들이 궁금하네요.

대학은 인문계열 학과를 다니다가 디자인과로 전과한 후, 회화과를 복수전공을 하다가 휴학 상태로 취업을 하는 바람에 복수 전공을 취하했어요. 결론적으로 전공은 디자인입니다. 졸업하는데 거의 10년이 걸릴 뻔했어요. 예전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술학원 다니다가 미술 전공해서 작가가 되었어요.”라고 가볍게 말하는 것이 쿨해보여서 부러운 마음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 워낙 작은 동네에 살아서 미술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 보니까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 미술을 하는 사람도 없고, 미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 것도 아닌 데다 다녔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미술하고 싶다고 하면 엄청 반대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왜 미술이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만들기 전에 이유를 생각해보는 게 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그게 제 동력인 것 같기도 하고요.

 


질문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에어슬랜드의 정체성은 작가 혹은 공예가나 제품 디자이너가 혼재된 것 같달까요. 그런 요소들이 섞여서 에어슬랜드의 작업에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것이 정말 큰 매력인 것 같고요. 

방금 말씀하신 정체성에 관한 것은 저도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일단 해놓고 보면 알게 되겠지 라는 식으로 작업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태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도 있고요. 뭔가 작업도 내놓지 않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느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먼저 풀어버리는 것이 무척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요. 일단 하고 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훨씬 크니까요. 기본적으로는 저는 무언갈 만드는 사람이고, 무언갈 만들기 위해 생활을 꾸리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대단한 걸 만들어 내겠어가 아니라, 무언갈 만들 준비를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무언갈 만들기 위한 일상을 잘 꾸려나가는 것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어떤 면에서는 작가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각각의 상황이 전도되거나 전복되지 않게 스스로를 지켜야지 작업이 유지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이게 한 2, 3년 후쯤 더 되면 더 분명해질 것 같긴 해요. 에어슬랜드 활동을 한 지 지금 2년 됐는데, 2년 전에 생각했던 것과 지금도 정말 다르거든요. 2년 전에는 이런 작업을 하면서도 그림만 잘 그렸다면 그림만 그리고 살아도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저의 베이스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일종의 콤플렉스처럼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만들어서 기쁘고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기적으로 그 생각이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계획이 분명하진 않아도 어렴풋하게 있긴 있으니, 30대 초반에 경제적 정신적 자립을 좀 이뤄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생각을 만약 20대 초반에 했으면 하고 싶은 일을 더 마음껏 했을 것 같긴 한데, 당시는 20대 후반이어서 막연하게나마 대비를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더 나이 들면 관절이 약해질 것이고, 작업하는 것이 건강상으로도 힘에 부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면 아웃소싱을 줘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니까(웃음) 활동을 엄청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출산을 하든 하지 않든 30대 중후반에는 전반적으로 신체적인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하는 단계니까 그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순 없지만,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계실 줄 몰랐어요. 

현재 하는 작업에 대한 기반을 좀 갖춰놔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니까 정말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항상 개인이 하던 작업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엄청 극적인 변화가 생길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건 사실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선택지가 차려져 있어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의 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다들 각자 고민을 하거나 정말 고민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수연 씨는 나름대로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 준비하고 계신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생활을 잘 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 같은 대략적인 방향성은 있지만, 뭘 할지는 아직 또렷이 알고 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잡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 가고 그런 식이죠. 그래서 지나온 2년도 이 상태로 가야지 하고 해온 것은 아니고 하나하나 하다 보니 된 것이라서요. 그래서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기도 하고 생산량을 늘린다는 것이 공장 생산 규모에 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직 그 안에서 나름의 시스템을 잡아간다는 면에서 어쨌든… 
작업의 출발은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재밌는 것을 해야겠다는 것이어서 일단 제가 발상부터 제작까지 제 손안에서 처리가 되는 방식이어야 했어요. 그리고 디자인 전공을 했을 때 미디어 기반의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요. 그에 대한 반향으로 디지털미디어가 대체할 수 없는 아날로그 영역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20세기에 생활에 필요한 웬만한 것이 다 만들어졌는데, 21세기에 제조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의문도 있었고요. 그런 궁금증들이 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한편으론 회사 다닐 때 월급의 20만 원은 제작비로 쓰겠다고 정해두고 제빵에 빠졌을 때는 제빵 도구를 사고, 또 다른 것에 관심이 갈 때는 그 돈으로 다른 재료를 사고 그랬어요. 1년이면 240만 원 정도를 몇 년 동안 재료 사는 데 쓰면서 방법을 찾아나간 것 같아요.

제조를 하게 되신 이유나 시작점도 궁금했었는데, 재밌네요.

회사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들었지만, 그중에 조립식 조명을 먼저 만들었어요. 지금 인스타그램 계정 가장 아래에도 아직 사진이 남아 있는데 ‘바꿔 낀다’라는 기본 아이디어를 두고 아티스트 에디션 혹은 양산형 식의 갈래를 두고 개발을 한 뒤에 특허를 알아봐서 디자인 등록을 해뒀었어요. 대량생산을 하는 방법도 또 누구에게 판매할지도 몰라 우선 집에만 두고 있었지만요.

그럼 내가 만든 것이 생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은 그때도 있었나요?

아뇨. 내가 만든 물건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어요. 일단 작업을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저조차도 현실 관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퇴근 후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 그때는 일단 포커스가 어딘가에 보여주거나 판매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에 맞춰져 있었어요. 대량생산에 대한 감이 없으니까 스컬피로 형태를 만들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체를 찾다가 조립식 초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첫 전시에도 조립식 조명 기술에 기반한 인스톨레이션으로 기획안을 제출했었어요. 그런데 당시 다니던 회사가 한창 바쁜 시즌이었고, 전시 일자는 다가오는데 도저히 조명이 계획대로 완성되지 않아서 지금의 형식과 같은 초를 만들어 함께 공간을 채웠어요. 그때 전시를 보신 분이 그 초로 플리마켓 참여를 권유하셔서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그 플리마켓에서 밀리언아카이브 대표님도 뵙게 되어 밀리언아카이브에서도 초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었고요.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내가 좋아서 만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예측도 당시엔 못 하셨겠어요.

다른 사람들 생각을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아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정말 적어서 내가 만든 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알릴지에 대해 정말 많이 몰랐어요.

 

나이스숍에 입점한 형태처럼 조립형 초를 작가가 완성한 에디션으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관객에게 직접 조립할 수 있게 하는 구성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은 엄청 디자인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혼자 좋아서 만들던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의도로 그런 판매방식을 채택하신 걸까요?

일단 저는 초를 파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 구매의 경험을 판다고 생각해요. 물론 판매 경험도 저에게 중요하고요. 작업을 어딘가에 보여주지 않고 지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제시해줄 수 있을까 또, 오브제를 매개로 타인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에 관해서 조금 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반에 작업하신 조명이 조립형이었던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어요. 만약에 조명 작업을 계속했었다면 그때도 타인에게 조명을 조립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때는 소비자나 관객이라는 개념이 없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정도로 관객을 상정했던 것 같아요. 그저 그 사람들과 함께 어떤 것을 나눌 수 있을까에 관한 의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방식에 관해서는 제 작업의 카테고리가 애매하다 보니 상거래가 될지, 미술관이 될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죠. 그때는 이게 막막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나니까 그렇게 불분명해서 생기는 가능성도 있었구나 하고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넘어가고 있어요. 그것을 강점으로 보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요.

 

에어슬랜드의 초 작업도 그렇고 페인팅 작업을 봤을 때도 에어슬랜드와 김수연만의 어떤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세계를 나눈다는 느낌과 각자의 세계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느껴지고요. 그런 점에서 밀리언아카이브에서 했던 세트아트워크가 흥미로웠어요. 이 작은 세계가 크게 확장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규모가 큰 작업을 더 하고 싶진 않으신지 궁금해요. 조건이나 상황을 떠나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하고요.

초 제작 워크숍은 따로 진행하지 않지만 <전자식물원>이나 프린트 베이커리에서 했던 <상상식물원> 워크숍처럼 미술관이나 기업에서 요청을 받아 진행해왔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그때그때 조율하고 있지만, 저는 그저 ‘예쁜 것을 만든다’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조형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일종의 원칙을 갖고 있어요. 아마 제가 미술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미술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강하지 않나 해요.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에 장소와 날씨 같은 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감정이나 영향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며 지냈지만, 이걸 나눌 수 없는 상태로 10대를 보내면서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눌 수 있을까 항상 의문을 가졌었던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생각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어떤 결정을 할 때 영향을 주는 것 같고요. 그런 지리적 감각이나 환경을 어떻게 표현하고 풀어낼지가 제 작업의 완전한 출발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구현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이에요. 꾸준히 다른 매체의 작업도 해나가려고 해요. 선보일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보편적인 생애주기를 고려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미래 계획을 세우고, 현대 미디어로 할 수 없는 방향의 작업을 찾고 그 작업이 무언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현실에 발붙이지 않는 생각으로 작업으로 시작하고요. 그런 지점이 재미있어요. 한 개인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그 극단의 양면을 볼 수 있어서요.

전공이나 영역에 대한 구분 없이 내가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궁금해하는지에 집중하는 성향이었고, 혼자 공상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러지 않나 싶어요.

 

 

초 외의 다른 더 큰 스케일의 작업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었죠. 미디어 아티스트와 했던 디지털 작업도 재미있었고요.

현재는 하고 있는 작업의 시스템을 조금 더 잡아서 일의 편의성을 높이고 싶은 게 가장 커요. 그러다 보니까 현재 작업에서 할 수 없는 비정형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계속 있어서, 방금 말씀하신 디지털 작업도 더 하고 싶어요. 당시엔 비정형적인 형태의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힘든 질감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적층이 되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했으면 좋겠다고 빌드업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까진 못 갔어요. 협업한 친구가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을 때 짧게 한 작업이라 그 초기 아이디어만 표현하게 되어 좀 아쉽죠.

확실히 그 작업 자체가 에어슬랜드 작업이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해요. 밀리언아카이브에서의 세트아트워크의 초기 아이디어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세트아트워크의 경우에는 성북문화재단의 성북도원 주관 <피치피치파티>에서 진행한 <전자식물원> 워크숍에서 만든 것을 재구성한 것이었어요. 관에서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었거든요. 다양한 질감표현이 가능했고 캐릭터를 부여한 다양한 식물을 쓰고요. 전시가 끝나고 작업을 보관해두고 있었는데 밀리언아카이브에서 그 작업을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게 설치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서 해볼 수 있었죠. 매체를 다양하게 쓰고 싶다 생각은 항상 있고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해요. 근데 항상 제가 기술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만큼으로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작의 한계를 알고 있으니까 그 범위 안에서 더 많이 상상하게 되는 게 큰 걸까요?

무엇을 만들겠다는 것에 관해서는 무궁무진하게 생각하는 편인데요, 항상 참여자에게 페이를 어떻게 줄 수 있을지가 막히더라고요. 제가 못 버는 건 상관없는데 이 작업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에게 페이를 적절하게 지급하려면 어느 선까지 해야 할 지 항상 고민이에요. 그래서 현재 작업의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는 것이 가장 시급하겠다 싶어 노력하고 있어요.

 

현실적인 바탕 위에서 본인의 것을 잘해나가고 계신 것 같아요. 

네, 굉장히 현실적이죠.

사실 많은 비슷한 상황의 창작자들이 이 고민을 가장 많이 할 것 같거든요. 저희도 한편으로는 투자 같은 큰 계기를 만들어야만 다음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많은데,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연 씨가 그런 부분에서 잘하고 계신 것 아닌가 싶고요.

최근에 리테일면에서든 예술의 접근성에 관해서든 창작품을 소개하는 플랫폼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그럼  그 만큼 플랫폼을 채우기 위한 콘텐츠가 필요해질 텐데 그렇다면 작업만 잘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필요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예 미술계가 아니더라도 이 많아진 플랫폼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구나, 내가 잘하고 있으면 기회는 올 것이라는 생각은 확고해요. 그러면 여기서 소모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VMD를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내 작업에 있어서 어떤 방향을 구축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떤 판 안에서 읽히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예전에는 부러움을 갖거나 조금 아쉽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우선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은데 수연 씨 방금 말씀을 보면 많이들 위안을 얻지 않을까 해요.

그 고민에 대해 이미 해결점을 찾으신 분들도 계시겠죠? 요즘은 기획적인 부분도 많이 고민이 되는데, 방금 말씀드린 플랫폼과 접점이 생겼을 때 창작자가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을 따져보면 창작자 개인으로만 이 고민을 가져가기엔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상황이 비슷한 창작자들과는 고민 정도를 나눌 수는 있지만, 고민하다 보면 작업할 시간만 줄어 들고요. 그래서 함께 모였을 때 생기는 힘에 관해서 생각은 해도 명확한 방향성을 찾기는 힘드니까 어려워요.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까 요즘 FDSC 분들의 응집력과 활동력이 멋있고 부럽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전시 계획에 대한 것도 좋고, 어떤 태도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요.

주문 제작 틈틈이 전시 준비와 협업을 진행 중이에요.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데 생계에 도움이 되는 제작 의뢰 일정에 쫓겨 많은 일이 늦춰지고 있네요.
1년 후쯤엔 저녁과 주말엔 쉴 수 있도록 일정한 휴식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요. 휴가는커녕 주말 없이 초를 만들고 지내고 있다 보니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래서 차차 에어슬랜드의 손이 되어줄 분들을 모시고 싶어요. 투자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돈을 벌고 시간을 벌어서 많이 걷고 충분히 사색하고, 계속해서 제가 가진 질문들을 탐구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기획 – 나이스숍
진행 – 김은하, 윤장미 
정리 – 윤장미
사진 – 임효진

 

 

김수연. 에어슬랜드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에어슬랜드는 저이기도 하고, 저의 세계이기도 하고, 제가 모르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사물들과 이미지들이 이루는 풍경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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